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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은 王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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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길수 댓글 0건 조회Hit 1,595회 작성일Date 20-06-1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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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객은 왕이 아니다>>
“고객은 왕(王)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고객을 그만큼 소중한 존재로 정중히 응대를 하라 는 의미이지 고객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에게 왕(王)처럼 굴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멍청이 들이 있다. 정말 무식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다. 지금 세대는 그것을 “갑질”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는다.
 그런데 몇 년전 군대의 별 네개 장군이 “공관병에 대한 갑질” 이란 죄목으로 군복을 벗었던 사건이 있었다. 그 배후에는 동성애 옹호자의 단체가 있다고도 하고 현 정부의 큰 영향력의 궤계로 그렇게 되었다는 말도 있으나 무었이 되었든지 간에 갑질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최소한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것이 과연 갑질이었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누가 갑질을 했는지 헷갈린다.
동성애는 요즘 그 개념을  확대하여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사회의 건강성을 파괴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미 동성애는 타고난 질병도 아니며 개인의 탐닉에 근거한 성취향이며 사회문제와 에이즈라는 질병을 퍼트리는 사회악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많은 연구들의 결과이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에게 까지 파고드는 이 동성애는 청소년들의 심각한 일탈을 조장하며, 좌파공산주의자들의 네오막시즘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페미니즘, 성혁명 사상과 함께 건강한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이들을 다시 건강한 사회인으로 회복시키기 위하여 이들 성 소수자들을 위한 많은 제도와 프로그램들이 마련되고 있지만 이들은 이것들을 거부하고 “차별금지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들을 방어하려하고 있다. 애초부터 이들은  이들 성 소수자를 비롯하여 여러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지는 법들을 받아들여 거듭나려는 생각은 없으며, 오히려 차별금지법을 이용하여  그들만의 권력을 누리려고 하고 있고, 더 나아가 그들의 행위에 반대하는 자들을 이 법을 이용하여 탄압하려는 역차별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소위 이 “성평등 사상” 을 무기삼아 그들만을 위한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굳이 적반하장 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위에서 말한 갑질 그 이상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고객이 왕처럼 군림하려는 것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더 한심한 것은 이런 자들의 옆에서 그들을 위한 답시고 내막을 모르고 옹호하는 자들이 많고, 정치적으로 그들을 이용하려는 사악한 인간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들 약자들을 이용하려는 사악한 인간들이다. 자신들이 뭔 평화의 천사인양, 약한 자들의 대변인인양 떠들어대는 자들을 보면 동성애자들 보다 더 역겨움이 느껴진다. 학생인권조례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학생인권조례를 옹호하는 인간들은 대부분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그 썩어빠진 조례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공산주의사상(그들은 진보주의,또는 사회주의라고 부른다)에 빠지도록(그들은 혁명이라고 부른다)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다. 정말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하다면 그들을 건전한 사회인으로 커 가도록 사랑을 가르치고 지혜를 가르쳐야지, 무슨 학생노동인권을 가르치고,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고, 대한민국의 헌법에 위배된 주적을 평화의 사자로 가르치고, 선생님을 고발하고 부모까지도 자신의 삶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혁명적 전술을 가르치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들이 내놓는 말도 안되는 사상과 제도들에 세뇌가 되었는지 이제 학부모들은 대항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냥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는 듯이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다.
 이 시대에 홀로 남은 것은 교회의 역할이다. 교회마저 이제는 같은 길을 걸어가서야 되겠는가? 교회마저 세상을 따라가서 되겠는가?
 얼마 전 새벽기도 중 목사님의 설교에서 동성애자들을 교회에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잠간 있었는데 그래도 우리교회는 아직 건전한 신앙관에 근거한 살아있는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만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남의 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적극적으로 아니라고 하고 막아야만 한다. 아니면 언젠가는 십자가를 내 발로 밟아야 할 때가 온다.

얼마전 나의 환자 분 중에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고 많이 호전되어서 다시 들른 분이 있었다. 처음에 편도염처럼 목구멍이 아파서 왔었는데 조직검사를 해서 암으로 판명되었다고 했을 때 자신은 그런 병에 걸릴 리가 없다고 서울의 대학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하겠다고 조직검사 슬라이드까지 챙겨갔었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도 동일한 진단이 나오자 수긍을 하고 치료를 받았던 터였다. 다시 왔을 때 내가 “요즘 어떤 마음이냐?” 고 묻자 암을 진단 받기 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을 했다. 맞다 자신이 직접 상황의 변화를 경험해 보기 전에는 그 소중함을 알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중공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도 마찬가지 이다. 많은 제한을 경험하고서야 이전의 일상적인 일들이 얼마나 자유롭고 소중했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 그래!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되지 !! 암 그렇구 말구 ” 라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자들을 보면, 그래! 니가 한 번 차별을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 라는 말을 퍼부어 주고 싶다. 학생인권조례를 찬성하는 사람에게는 ”네 자식이 너를 고발하는 상황을 경험 해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라는 말을 퍼부어 주고 싶다.
다시 한 번 말한다. “ 고객은 왕(王)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