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폐렴과 카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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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길수 댓글 1건 조회Hit 1,609회 작성일Date 20-03-15 13:04본문
<< 우한발 코로나 바이러스와 예배>>
우한발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주일에 예배당 예배가 아닌 가정에서 인터넷예배를 한지가 벌써 4주째 이다. 물론 주일 예배가 중단된 것은 아니지만, 한달 째 공예배를 하지 못하니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생활리듬이 깨어지는 것이 당연하고 슬슬 스트레스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물론 주일에 예배당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편안히(?) 예배하는 것이 더 좋은 성도도 있을 것이다. 과연 어느 것이 더 편안한 것일까?
1년쯤 전 겨울에 중국 위그루 자치구, ‘카쓰’ 란 도시에 다녀왔다. 위그루 자치구는 중국에서 지금 현재 가장 핍박이 많이 가해지는 자치구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의 위그루족은 대부분 무슬림 이다. 이들의 종교를 유물론적 공산주의를 숭배하는 중국정부에서 말살을 하고 그들을 자신들에게 복종시키려는 시도인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많은 자들이 갇히거나 생사를 모른다는 것이고, 그 대상은 현지 위그루인 뿐 아니라 선교사나 이방인도 마찬가지란 것이었다. 물론 그곳에 많은 기독교 선교사들도 있었으나 핍박으로 인해 대부분의 선교사는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선교사는 그 곳에서 아직 떠나지 않았다. 그곳에 내가 간 이유 중 하나도 구체적 상황도 파악할 겸, 상황이 너무 어려우니 잠시라도 피해있기를 그에게 권유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핍박이 있다고 하나님을 전하는 내가 떠나면 핍박 가운데에도 하나님을 믿고 있는 그들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그들을 향해 핍박 가운데에도 하나님을 믿으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나는 선교사이므로 죽어도 여기서 죽겠노라” 라는 이야기 였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뭉클하고 눈물이 나왔다. 안타깝기도 했다. 내가 너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먼 곳에 하루 여행을 가자는 것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영하16도 정도의 날씨에 우리는 8시간 정도의 길을 달려 아주 먼 설산의 다른 소수민족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저물었고 겨우 작은 숙소를 한곳에 정하고 언 몸을 녹일 겸 식사 후에 숙소 방으로 들어왔다. 그 선교사가 하는 말인 즉 , 이곳에 예배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도시에는 중국 공안의 도청이나 감시가 심해서 예배를 할 수가 없으니, 여행객을 위장해 공안의 눈도 피하고, 통신도 잘 되지 않은 이곳에서 예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예배를 마음껏 드려본지가 너무 오래 되었고, 그래서 자신을 위해 예배를 드려 달라고 했다. 우리 네 사람은 휴대폰전원과 배터리를 빼두고, 그렇게 찬송과 말씀, 기도로 2~3시간 예배를 하고 2시간쯤 눈을 붙이고 다시 귀국을 위해 8시간이상의 얼어붙은 길을 달려 내려왔다. 그 때 느낀 것이 우리가 한국에서 편안하게, 시간도 선택해 가면서, 어쩌면 빼먹어 가면서 드리는 예배가, 그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건 예배가 되며, 그 한 번의 예배를 위해서 16시간이상을 달려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으며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은혜였는지를 다시 한번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즘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러나 그것의 구체적인 활동을 잘 알지는 못하는 “바이러스” 라는 것이 알려진 것은 불과 130여년전에 불과하다. 작은 세균 즉 박테리아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 졌지만 바이러스의 존재는 몰랐던 시절 1892년 러시아의 드미트리 이바노프스키(Dmitry Ivanovsky, 1864~1920)에 의해서 처음으로 식물에서 기생하는 바이러스가 발견된 이후 이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많은 질병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우리는 이것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심각한 병을 가져다주며, 이 때문에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모든 삶의 패턴을 변화시켜버리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 삶을 심하게 움직이고 변화시킨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수천년 전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알아왔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고 하여도 말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 행여 가장 가까이는 예배가 인터넷 실황예배로 바뀌었다고 조금은 나태한 마음과 자세로 예배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나의 생활을 말씀에 기준해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소홀하게 생각하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인도 보다 세상의 논리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것 에 타협하고 있지는 않을까 ?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데카르트식 신의 존재 증명의 일부에 의하면
나는 의심하는 존재이므로 불완전한 존재이다. 나를 비롯해 인간보다 완전한 존재에 대한 관념이 불완전한 존재의 관념으로부터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완전한 존재에 대한 관념은 불완전한 나로부터 나올 수는 없고 신(神)이 나에게 넣어 준 것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신(神)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피조물에 불과하다, 이런 내가 내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도, 설령 인정한다고 해도 불순종하거나 내 맘대로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중국 우한발 바이러스를 생각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 그러나 무소불위하신 하나님을 은혜를 생각하자.
우한발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주일에 예배당 예배가 아닌 가정에서 인터넷예배를 한지가 벌써 4주째 이다. 물론 주일 예배가 중단된 것은 아니지만, 한달 째 공예배를 하지 못하니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생활리듬이 깨어지는 것이 당연하고 슬슬 스트레스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물론 주일에 예배당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편안히(?) 예배하는 것이 더 좋은 성도도 있을 것이다. 과연 어느 것이 더 편안한 것일까?
1년쯤 전 겨울에 중국 위그루 자치구, ‘카쓰’ 란 도시에 다녀왔다. 위그루 자치구는 중국에서 지금 현재 가장 핍박이 많이 가해지는 자치구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의 위그루족은 대부분 무슬림 이다. 이들의 종교를 유물론적 공산주의를 숭배하는 중국정부에서 말살을 하고 그들을 자신들에게 복종시키려는 시도인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많은 자들이 갇히거나 생사를 모른다는 것이고, 그 대상은 현지 위그루인 뿐 아니라 선교사나 이방인도 마찬가지란 것이었다. 물론 그곳에 많은 기독교 선교사들도 있었으나 핍박으로 인해 대부분의 선교사는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선교사는 그 곳에서 아직 떠나지 않았다. 그곳에 내가 간 이유 중 하나도 구체적 상황도 파악할 겸, 상황이 너무 어려우니 잠시라도 피해있기를 그에게 권유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핍박이 있다고 하나님을 전하는 내가 떠나면 핍박 가운데에도 하나님을 믿고 있는 그들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그들을 향해 핍박 가운데에도 하나님을 믿으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나는 선교사이므로 죽어도 여기서 죽겠노라” 라는 이야기 였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뭉클하고 눈물이 나왔다. 안타깝기도 했다. 내가 너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먼 곳에 하루 여행을 가자는 것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영하16도 정도의 날씨에 우리는 8시간 정도의 길을 달려 아주 먼 설산의 다른 소수민족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저물었고 겨우 작은 숙소를 한곳에 정하고 언 몸을 녹일 겸 식사 후에 숙소 방으로 들어왔다. 그 선교사가 하는 말인 즉 , 이곳에 예배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도시에는 중국 공안의 도청이나 감시가 심해서 예배를 할 수가 없으니, 여행객을 위장해 공안의 눈도 피하고, 통신도 잘 되지 않은 이곳에서 예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예배를 마음껏 드려본지가 너무 오래 되었고, 그래서 자신을 위해 예배를 드려 달라고 했다. 우리 네 사람은 휴대폰전원과 배터리를 빼두고, 그렇게 찬송과 말씀, 기도로 2~3시간 예배를 하고 2시간쯤 눈을 붙이고 다시 귀국을 위해 8시간이상의 얼어붙은 길을 달려 내려왔다. 그 때 느낀 것이 우리가 한국에서 편안하게, 시간도 선택해 가면서, 어쩌면 빼먹어 가면서 드리는 예배가, 그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건 예배가 되며, 그 한 번의 예배를 위해서 16시간이상을 달려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으며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은혜였는지를 다시 한번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즘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러나 그것의 구체적인 활동을 잘 알지는 못하는 “바이러스” 라는 것이 알려진 것은 불과 130여년전에 불과하다. 작은 세균 즉 박테리아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 졌지만 바이러스의 존재는 몰랐던 시절 1892년 러시아의 드미트리 이바노프스키(Dmitry Ivanovsky, 1864~1920)에 의해서 처음으로 식물에서 기생하는 바이러스가 발견된 이후 이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많은 질병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우리는 이것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심각한 병을 가져다주며, 이 때문에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모든 삶의 패턴을 변화시켜버리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 삶을 심하게 움직이고 변화시킨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수천년 전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알아왔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고 하여도 말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 행여 가장 가까이는 예배가 인터넷 실황예배로 바뀌었다고 조금은 나태한 마음과 자세로 예배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나의 생활을 말씀에 기준해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소홀하게 생각하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인도 보다 세상의 논리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것 에 타협하고 있지는 않을까 ?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데카르트식 신의 존재 증명의 일부에 의하면
나는 의심하는 존재이므로 불완전한 존재이다. 나를 비롯해 인간보다 완전한 존재에 대한 관념이 불완전한 존재의 관념으로부터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완전한 존재에 대한 관념은 불완전한 나로부터 나올 수는 없고 신(神)이 나에게 넣어 준 것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신(神)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피조물에 불과하다, 이런 내가 내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도, 설령 인정한다고 해도 불순종하거나 내 맘대로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중국 우한발 바이러스를 생각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 그러나 무소불위하신 하나님을 은혜를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