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더딛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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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미 댓글 3건 조회Hit 2,411회 작성일Date 10-06-25 23:45본문
안녕하세요 저는 남산경로대학을 3년차 섬기고 있고요 우리 어르신들의 움직임을 사진으로 담고 차량도우미를 하고 있는 김은미자매입니다..아무런 생각없이 있다가 이정분학감님이 2010년 상반기 경로대학종강식을 하면서 글을 한번 써보라고 하시는데 글재주가 없는 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과제로 부담을 가졌습니다..
학감님께서는 부담없이 엄마의 변화된 모습을 간략하게 써보라고 하셔서 용기를 내어 두서없이 몇자 적기전에 엄마가 왜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는지부터 얘기를 해야 될것 같습니다..
저는 엄마와 단둘이 살았습니다..자식이라고 저 하나밖에 없었고 그 딸이 결혼을 하게 되어서 저는 창원에 엄마는 시골에서 혼자 살았습니다..아들밥은 앉아 먹고 사위밥은 서서 먹는다며 같이 살기를 꺼려 하셨던 엄마가 지금으로부터 7~8년전에 다리가 많이 불편하셨던 엄마... 무릎관절수술을 양쪽 다하셨습니다. 수술후에 배에 복수가 차고 몸이 붓고 식사를 거의 못하시고 해서 이것 저것 검사를 해보니 간경화에 신부종증에 그래서 콩팥기능이 너무 안좋고 담석이 몇군데 있다고 하는데 도저히 엄마를 혼자 남겨 놓고 창원에 올수가 없어서 제가 창원으로 모시고 와서 입원을 시켰는데 여기서도 별좋은 얘기를 안하고 부산쪽 큰병원에 가보라고 거기서 항암치료를 같이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는겁니다..앞이 캄캄했고 내색은 안냈지만 울기도 했지요..
그때 누군인지는 지금은 기억은 잘나지는 안치만 돌아가실때 많이 아파하지 안고 편하게 가시길 기도하라고...말을 해주는 지체의 말이 생각났습니다..글쎄 그때는 무슨 배짱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와 저는 그냥 이곳에서 계속 검사하고 약먹고 음식조절하기로 했습니다..퇴원을 할때 오래 못사실거라고 했습니다..이때 우리 가족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었나 봅니다.
저희 엄마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잘버티고 계십니다..
저희집에 엄마랑 같이 살면서 엄마는 다리가 불편하신 관게로 밖의 출입을 거의 안하시고 아니 못하시고 주일낮예배보러 교회에 가는게 유일한 외출이였는데 ..다리가 불편해서 움직이는게 힘드시니깐 맨뒷자리에 앉았다가 젊은 사람들한테 치일까바 서둘러 나오셨던 엄마입니다..수술을 할때 넘어지면 다시는 걷지 못한다고 항상 조심 조심하라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셔서 항상 주의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던중에 남산경로대학이 우리교회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한다는 소리를 들어서 엄마께 몇번 가시라고 했더니 다리도 불편한 내가 가서 뭐하냐고 매번 거절을 하셨어요.
보다못해 제가 같이 가자고 해서 같이 발걸음을 내디딘것이 저는 교사가 되었구요 엄마는 학생이 되었습니다..그것도 대학생이요..처음 경로대학을 할때는 샘들이 별로 안계셔서 도우미샘들이 많이 필요로 할때라서 두말없이 하기로 했지요..요즘에는 이영숙샘이 어르신들과 함께 준비운동겸 한주간의 안부를 묻고 권대성전도사님의 꿀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르신들께 전하고 반은 3개로 국화반, 진달래반, 장미반으로 나누어지지만 한분의 선생님이 80~90명되는 어르신들을 이끌기 너무 힘들어서 동적인반으로 그나마 걷는데 별지장이 없는 어르신들을 위해 전통무용을 가르치는 반이 있고 정적인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위해 만들기반으로 나누어져 핀도 만들고 머리띠도 만들고 핸드폰고리도 만들어 하고 다니시는걸 보면 흐뭇하기까지 합니다. 다른부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경로대학샘들은 단합이 잘되고 화기애애한것 같아 너무 좋습니다..
여러 어르신들과 함께 운동도 하시고 게임도 하시고 춤도 추시고 노래도 부르시고 만들기도 하시고 봄*가을 소풍이며 작은 운동회도 하시면서 비록 빠른 걸음은 아니지만 더딘 걸음걸음으로 주일낮예배,수요낮예배, 금요경로대학을 옮기는 발걸음이 우리 젊은 발걸음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연세가 연세인지라 자주 아프실때가 있어 푹 쉬시라고 아프면 경로대학에 못가신다고 하면 죽어도 갈거라고 웃으시면 말씀을 하십니다..
그 예전에 "나같은 사람이 가서 뭐해?? 안간다" 하셨던분이 이제는 당신이 알아서 준비하시고 챙기시는 모습을 볼때 7~8년전에는 감히 상상을 못했습니다..
부디 더 아프지 마시고 오래오래 건강해서 우리와 더불어 같이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우리 경로대학어르신들도 아프지 안고 건강하게 여름을 보내시고 다시 뵙기를 원합니다..
학감님께서는 부담없이 엄마의 변화된 모습을 간략하게 써보라고 하셔서 용기를 내어 두서없이 몇자 적기전에 엄마가 왜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는지부터 얘기를 해야 될것 같습니다..
저는 엄마와 단둘이 살았습니다..자식이라고 저 하나밖에 없었고 그 딸이 결혼을 하게 되어서 저는 창원에 엄마는 시골에서 혼자 살았습니다..아들밥은 앉아 먹고 사위밥은 서서 먹는다며 같이 살기를 꺼려 하셨던 엄마가 지금으로부터 7~8년전에 다리가 많이 불편하셨던 엄마... 무릎관절수술을 양쪽 다하셨습니다. 수술후에 배에 복수가 차고 몸이 붓고 식사를 거의 못하시고 해서 이것 저것 검사를 해보니 간경화에 신부종증에 그래서 콩팥기능이 너무 안좋고 담석이 몇군데 있다고 하는데 도저히 엄마를 혼자 남겨 놓고 창원에 올수가 없어서 제가 창원으로 모시고 와서 입원을 시켰는데 여기서도 별좋은 얘기를 안하고 부산쪽 큰병원에 가보라고 거기서 항암치료를 같이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는겁니다..앞이 캄캄했고 내색은 안냈지만 울기도 했지요..
그때 누군인지는 지금은 기억은 잘나지는 안치만 돌아가실때 많이 아파하지 안고 편하게 가시길 기도하라고...말을 해주는 지체의 말이 생각났습니다..글쎄 그때는 무슨 배짱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와 저는 그냥 이곳에서 계속 검사하고 약먹고 음식조절하기로 했습니다..퇴원을 할때 오래 못사실거라고 했습니다..이때 우리 가족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었나 봅니다.
저희 엄마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잘버티고 계십니다..
저희집에 엄마랑 같이 살면서 엄마는 다리가 불편하신 관게로 밖의 출입을 거의 안하시고 아니 못하시고 주일낮예배보러 교회에 가는게 유일한 외출이였는데 ..다리가 불편해서 움직이는게 힘드시니깐 맨뒷자리에 앉았다가 젊은 사람들한테 치일까바 서둘러 나오셨던 엄마입니다..수술을 할때 넘어지면 다시는 걷지 못한다고 항상 조심 조심하라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셔서 항상 주의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던중에 남산경로대학이 우리교회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한다는 소리를 들어서 엄마께 몇번 가시라고 했더니 다리도 불편한 내가 가서 뭐하냐고 매번 거절을 하셨어요.
보다못해 제가 같이 가자고 해서 같이 발걸음을 내디딘것이 저는 교사가 되었구요 엄마는 학생이 되었습니다..그것도 대학생이요..처음 경로대학을 할때는 샘들이 별로 안계셔서 도우미샘들이 많이 필요로 할때라서 두말없이 하기로 했지요..요즘에는 이영숙샘이 어르신들과 함께 준비운동겸 한주간의 안부를 묻고 권대성전도사님의 꿀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르신들께 전하고 반은 3개로 국화반, 진달래반, 장미반으로 나누어지지만 한분의 선생님이 80~90명되는 어르신들을 이끌기 너무 힘들어서 동적인반으로 그나마 걷는데 별지장이 없는 어르신들을 위해 전통무용을 가르치는 반이 있고 정적인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위해 만들기반으로 나누어져 핀도 만들고 머리띠도 만들고 핸드폰고리도 만들어 하고 다니시는걸 보면 흐뭇하기까지 합니다. 다른부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경로대학샘들은 단합이 잘되고 화기애애한것 같아 너무 좋습니다..
여러 어르신들과 함께 운동도 하시고 게임도 하시고 춤도 추시고 노래도 부르시고 만들기도 하시고 봄*가을 소풍이며 작은 운동회도 하시면서 비록 빠른 걸음은 아니지만 더딘 걸음걸음으로 주일낮예배,수요낮예배, 금요경로대학을 옮기는 발걸음이 우리 젊은 발걸음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연세가 연세인지라 자주 아프실때가 있어 푹 쉬시라고 아프면 경로대학에 못가신다고 하면 죽어도 갈거라고 웃으시면 말씀을 하십니다..
그 예전에 "나같은 사람이 가서 뭐해?? 안간다" 하셨던분이 이제는 당신이 알아서 준비하시고 챙기시는 모습을 볼때 7~8년전에는 감히 상상을 못했습니다..
부디 더 아프지 마시고 오래오래 건강해서 우리와 더불어 같이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우리 경로대학어르신들도 아프지 안고 건강하게 여름을 보내시고 다시 뵙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