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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미(Savory 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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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길수 댓글 0건 조회Hit 7회 작성일Date 26-04-26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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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최초의 마취과 의사이시기도 하다. 아담을 잠재워 통증없이 하시고,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창조하셨고 아담은 하와를 보고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 이라고 극찬을 하였다. 그리고 그 창조물 인간에게 만유에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감각기관을 또한 주셨다. 아름다운 것을 보게할 눈, 아름다운 소리를 듣게 할 귀, 향기로운 냄새를 맡게 할 코, 맛있는 음식을 음미할 수 있는 입, 그리고 모든 것을 느끼게 할 온 몸의 감각 들이다.
그런데 이런 귀한 감각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인간은 비참해지고 그 비참한 만큼 하나님께서는 슬퍼하실 것 같다.
‘눈’은 탐욕의 출발이 될 수 있고, ‘귀’는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갈 통로가 되며, ‘코’는 썩은 존재만 킁킁거리며 찾는 도구가 되며, ‘입’은 험담과, 욕과, 거짓과 몸을 상하게 하는 음식을 삼키는 통로가 된다.

창세기 26장과 27장에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가족의 기록이다.
나이가 들어 눈이 어두워진 이삭은 죽을 날이 가까워 진 것을 알고 큰 아들 에서를 불러 자신에게 ‘별미’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러면 축복을 마음껏 해주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이미 자신의 뜻과는 달리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식에게 축복하고자 하는데 조건이 필요한가? 오히려 ‘별미’라는 조건없이 ‘단장(斷腸)의 아픔’ 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하고 축복해야 할 것이 아니었던가? 
‘별미(savory food)’ 는 무엇인가? 몸에 좋은 음식인가? 입만을 즐겁게 하는 음식인가?
분명 아버지 아브라함의 삶의 모습을 보았고, 모리아 산에서의 사건과 자신이 어떤 존재였던지를 알고 있었는데, 그리고 에서와 야곱이 태어날 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는 하나님의 계시도 알고 있었는데, 나이가 드니 하나님의 명령도 잊고, 자신이 누구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될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입에 “별미” 만 관심있을 뿐이었다. 무엇이 이삭을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영적인 ‘눈’ 이 어두워졌고, ‘입’의 감각도 축복과 기도의 도구가 아닌 육체를 즐겁게만 하는 감각기관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긋난 모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리브가의 모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라고 야곱을 닦달한다. 아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이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는데도 자신만을 믿고 따르라고 다구친다. 자신의 계획범죄에 사랑하는 아들을 개입시키고 만 것이다.
야곱은 끊임없이 속이는 자의 길을 걷고 있는데, 그런자의 눈에 어머니의 잘못된 인도가 불안해 보였지만, 도박과 마찬가지로 욕심이 앞선 그의 ‘눈’에 그 불안감은 거저 작은 걱정거리일 뿐이었다. 결국 저주가 걱정되면서도 결국 어머니의 잘못된 판단에 편승하고 만다.
이삭과의 결혼 전후의 젊은 시절엔 순종적이고 영특하며 상황파악도 빠르고 결단력도 뛰어났던 그녀가 나이가 들자 감각기관의 기능과 영적 판단력이 떨어진 것이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에 잠잠히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그 섭리를 앞당기고 심지어 자신의 뜻으로 이루려고 했다. 그것은 교만함이다. 그리고 가정의 제사장인 가장까지 속이려 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녀의 마음과 감각기관에는 교만, 편애, 욕심 등이 그녀의 정체성을 대신하고 있다. 특히 하나님의 섭리조차 개입하려는 태도. 혹 그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태도가 아니었을까?
먼저 나오는 에서의 결혼 즉 히브리족속이 아닌 가나안 족속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그리 이상할 것이 없다.
이삭은 믿음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밧단아람에서 부인인 리브가를 얻게 되었으나, 한 편 점점 영적인 눈, 즉 감각이 희미해지는 가족을 보면서, 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정면 도전하며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것도 둘씩이나.
그리고 장자권도 팔고, 축복권도 빼앗기고 말았다. 잘 될 수가 없는 장면이다.

짧은 내러티브이지만 이 가족의 이야기 속에는 약속과 믿음의 가족 내의 영적타락과 분열을 볼 수가 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은 믿음의 아버지였지만, 2대, 3대 내려갈수록 점점 영적인 쇠약의 길을 가고 있다. 야곱의 아내들과 자식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며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열 두 아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에 따른 섭리, 그리고 그 곳에서 피조물인 인간들은 조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즉 주인공의 역할을 드러내기 위해서  조연들은 그저 맡은 바 역할을 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처음부터 그러하였는데 그들은 자신의 감각대로 할 수 있다고 잘 못 믿었을 뿐이었다. 결국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만이 이 타락의 길을 멈추게 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고 그의 뜻을 이루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역사의 정점(頂点)은 갈보리 언덕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