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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길수 댓글 0건 조회Hit 164회 작성일Date 25-12-0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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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경을 가지고 장난치는 자들]
 - 성경을 좀 안다고 하거나 그런 위치에 있는 자들의 그릇된 사고 방식

1.성경적 용어나 신학적 용어로 스스로 방어하거나 타인을 교묘히 공격하는 자들.
오직 성경으로, 오직 복음으로 순결하고 거룩해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어떻게 거룩과 순결을 세상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말과는 또다른 문제이다.
예를 들면 북한, 중공은 그곳의 성도나 교회가 거룩과 순수함이 없어서 그 땅에 신앙이 무너지고 교회가 없어져 버렸는가?
그 이유는 악한 세력들로부터 막아낼 힘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2. 근본주의(Fundamentalism)
모세오경(토라)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이런 정신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대로 살아야 하고 그 외의 것들은 우상숭배나 다름없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말씀을 지키려면 외세, 정치적, 문화적 공격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도가 이렇게 방어하고자 하는 행위를 정치적이라고 한다면 신앙의 본질을 가지고 숨는 비겁함이며 방어를 위해 전면에서 싸우는 선한 성도(동료)의 등 뒤에서 칼을 꽂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3. 성경적 명령, 또는 율법주의(Legalism)
반성경적 문화에 대한 반대를 오늘날 사회문화적으로 맞지 않다고 교묘히 물러서는 자들이 있다. 더 나아가 반성경적 법안이나 문화가 만들어지지 못하게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자들을 정치활동한다고 폄하하는 자들이 있다.
어쩌면 이들은 가장 먼저 성경의 무오성 거룩함을 부정하는 자들일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타인도 못들어가게 막는 바리새인 같은 사악한 자들일 수 있다. 화(禍) 있을찐저!
전정한 성도, 성경을 믿는 자들은 오히려 이런 반성경적 사상과 법안이 이 시대에 통용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막은 자들이다.
야고보서에는 듣고 행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구원 받은 자의 길이라고 했다.

4. 그리스도인의 정치관을 모욕하는 사역자나 거짓 신앙인
이들은 그리스도인의 정치관을 과거의 영지주의(Gnosticism)으로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교회나 종교계의 지위를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노선과 다르거나 다른 견해를 가진 건전한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이나 반성경적 사상으로 매도하여 참된 성경적 진리의 수호를 막는 경우도 있다.

5. 사랑이라는 용어로 惡을 용납하는 나쁜 종교지도자들:
공산주의, 사회주의, 성소수자,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를 교묘히 교회에서 용남하라고 가르치는 자들도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적 사랑”을 왜곡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아말렉과 블레셋을 진멸하라고 하셨는가?

6. 우상숭배의 잣대를 함부로 들이대는 자들
위대한 사람을 존경하는 행위를 우상숭배라고 매도하는 나쁜 자들도 넘쳐난다.
나라와 교회를 지키기 위해 순교한 순교자들과, 나라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정치 지도자를 존경하는 것이 우상숭배인가?
이승만 대통령의 애국심의 근본은 기독교 신앙에 있었고, 3.1운동의 근본정신도 기독교 신앙에 있었다. 신앙의 이름을 빌려 거룩한 정치활동을 매도하는 행위야 말로 교회와 기독교 신앙의 질을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심지어 최근 반성경적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합법화를 막고자 활동하는 손현보, 김장한 목사 같은 분들을 향한 악한 목사들과 교회의 비판은 거룩한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아니 그 매도하는 종교지도자야 말로 악한 정권의 부역자에 불과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위대한 지도자를 우상으로 섬긴다는 논리(論理)는 가장 악날한 왜곡이다.
그러면 집에서 아버지,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것도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우상숭배이다.
교회와 신앙을 지키고 나아가 안정된 사회와 나라를 지켜내려는 자들을 권력욕에 사로잡힌 신앙인으로 매도해서는 안된다. 교회내에서는 더더욱 그러면 안된다. 우리나라 사람의 고질적인 병폐중의 하나가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참는다.” 이다. 사촌이 잘되면 배가 아픈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다.

7. 약자를 보호하는 것에 몰입하여 건전한 가진 자와 능력자를 무시하는 목사와 성도들.
열심히 일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성경적 원리이다. 요셉도 그렇게 부를 쌓았고, 아브라함도 부자고 드보라도 부자였다. 부자와 나눔이라는 것은 별개로 성경 말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조차 “기업은 노동자를 무조건 쥐어짠다.” “ 권력자는 무조건 서민을 핍박하고 옥죈다.” 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우리나라 세금은 상위10%의 부자가 모든 세금의 90%를 담당하고, 상위10%의 부자가 모든 의료보험료의 90%를 담당한다. 부자가 있었기에 보편적 복지가 흘러갈 수 있는 구조이다.
이업은 이윤을 추구해야 고용을 창출하고 그 이익의 사회환원을 할 수가 있다. 기업인들이 기업이윤을 추구하는 행위가 얼마나 힘들고 고되고 피말리는 일인지 기업이나 사업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목사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대다수의 성도들의 인기를 얻고자 선량하게 기업활동을 하는 사업가를 수전노처럼 매도하면 안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많은 교회가 사업하고 돈을 많이 버는 성도가 많아져 교회헌금이 많이 들어오기를 바란다는 것이고 심지어 자랑까지 한단다. 이런 이중적인 사고방식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 교회의 많은 사역자들이 이런 이중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고 심지어 사회공산주의 사상을 갖고 있는 자가 많아 신학교에서도 노골적으로 졸업생이 길러지고 있다고 한다.
공산주의 사상의 핵심은 계급투쟁이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권력자와 피지배자, 능력자와 무능력자 로 자꾸 나누면 나눌수록 성경적 가치관에서부터 멀어진다. 이들은 교묘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미래교회에 우려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유튜브나 인터넷에 매체를 통해 이러한 왜곡된 신앙적 판단이 수 없이 쏟아져 나온다.  올바른 신앙적 설교나 견해도 많이 나온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교회의 설교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성도들에게는 잘못된 신앙관, 역사관, 정치관을 갖게 만들어 그 한 사람을 무너뜨리는 바리새인의 채찍이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