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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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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12회 작성일Date 26-08-2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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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저지르는 수많은 죄를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아마도 교만일 것입니다.
성경은 이 교만의 본질을 ‘하나님같이 되려는 마음’이라고 하고, 이를 원죄라고 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원죄는 하나님 없이 살아보려는 인간의 의식에서 시작되고, 인간은 점차 그런 상태에 익숙해진다.”(『오스왈드 챔버스의 제자도』).
결국 교만이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부터가 아닌 하나님 없이도 내 생각과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태도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결과는 혹독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머무는 곳이 낙원이라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삶은 결국 실낙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회복의 길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말이 두 번 반복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창 30:2, 50:19).
이 두 외침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인간이 결코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으며, 대신해서도 안 된다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이 입술에만 머물지 않고 삶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회복은 시작됩니다.

    먼저는 야곱의 입을 통해서입니다. 아들을 낳지 못해 언니 레아와의 경쟁 속에서 절망하던 라헬은 야곱에게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겠노라”라고 말합니다. 그때 야곱은 분노하며 대답합니다.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창 30:2).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에 이 말 자체는 옳지만 문제는 야곱의 삶이 그 고백을 끝까지 따라가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꾀로 재산을 늘리려 했고, 라반과 경쟁하며 자신의 방법으로 미래를 만들어 가려 했습니다.
라헬 역시 하나님을 기다리기보다 합환채에 기대어 경쟁에서 이기려 했습니다. 이렇게 입술로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삶은 여전히 자신의 주권을 붙들 때 주변은 변하는 것이 없이, 또 다른 양육강식의 정글 같은 치열한 경쟁 세상이 펼쳐질 뿐입니다. 

    반면 창세기 마지막인 요셉의 이야기에 이르면 같은 말이 전혀 다른 무게로 들립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들은 요셉의 복수를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사람을 보내 용서를 구하고, 직접 찾아와 엎드려 용서를 빕니다. 그때 요셉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창 50:19). 이 말은 야곱의 말과 같지만, 그 깊이는 전혀 다릅니다.
13년의 종살이와 감옥살이, 억울함과 배신의 시간을 지나며 요셉은 하나님의 주권을 삶으로 배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상처도, 억울함도, 복수할 권리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들을 정죄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말하며 진심으로 그들을 위로합니다(창 50:21).
야곱에게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는 입술의 말이었지만, 요셉에게는 삶의 고백이었습니다. 신앙은 입술보다 삶에서 증명됩니다.

  창세기의 마지막에 요셉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창 50:24).
결국 창세기는 에덴을 잃은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돌보시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소망으로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같이 되려는 곳에는 언제나 낙원의 상실이 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곳에는 언제나 낙원의 회복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주권인정은 반드시 입술을 넘어 삶이 되어야만 에덴은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삶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