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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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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87회 작성일Date 26-08-07 13:43

본문

‘기다림’은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삶의 예술입니다.
기약이 있는 기다림도 인내를 요하거늘, 기약 없는 기다림은 때로 영혼의 뼈를 마르게 하는 고역이 되곤 합니다.
시편을 묵상하다 보면, 하나님을 향해 거듭 토해내는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탄식과 마주하게 됩니다
(시 6:3; 13:1-2; 35:17; 74:10; 79:5; 80:4; 89:46; 90:13).
그중 시편 13편은 시작부터 네 번이나 그 절박한 질문을 쏟아내며, 감출 수 없는 아픔을 보여줍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시 13:1-2)

      이 질문이 터져 나오는 자리에는 늘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상황은 설명조차 사치일 만큼 고통의 극에 달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잊으신 듯, 혹은 버리신 듯, 혹은 철저히 무관심하신 듯 응답이 없으십니다.
그 침묵의 시간 동안 우리는 아픔과 혼란을 고스란히 쏟아 부으며 호소합니다.
어쩌면 그 탄식의 문장 하나하나마다 우리 인생의 무거운 시간들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절박함을 다 아심에도, 그토록 긴 침묵으로 우리를 기다리게 하시는 걸까요?

      얼마 전,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타인은 나를 모른다』를 읽으며 ‘기다림’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았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보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침마다 보타가 다가와 다리에 몸을 비비며 “내 밥은 언제 줄 건가요?”라고 간청할 때,
이미 최상급 식사가 준비되어 있음에도 그는 의도적으로 식사 시간을 조금 늦춘다고 했습니다.
그 간절한 기다림과 식사를 향한 갈망이 곧 고양이의 ‘심신 건강의 비결’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보타는 실제로 보통 고양이보다 두 배나 긴 25년이라는 시간을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고양이에게 ‘기다림’이 생명의 활력이듯,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해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묻는 부르짖음은 영적 생명력을 지키는 귀한 방편입니다.
낙심과 회의가 파도처럼 밀려올 때, 침묵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옷자락에 마음을 비비며 모든 감정을 쏟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영적 야성’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소망을 품었다가도 금세 두려움에 빠지고, 열심을 내다가도 회의감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시편의 기자들이 끝내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그 침묵 너머에 분명히 준비되어 있는 주님의 ‘인자하신 사랑(헤세드)’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시 13:5; 17:7; 25:6; 31:7, 등).

    그러니 우리가 신앙의 여정에서 겪는 낙심과 회의, 그리고 희망의 교차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주님, 제 영혼의 양식을 언제 주실 건가요?”라고 간절히 몸을 비비며 요구하는, 지극히 건강하고 역동적인 영적 반응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탄식의 끝에 찾아올 응답은 우리의 내면을 이전보다 더 깊고, 단단하며, 거룩하게 빚어낼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지나고 있는, 쉽지 않은 이 ‘기다림의 시간’은 훗날 당신의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건강하게 완성될 또 하나의 시편이 될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