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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돼지 삼형제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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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032회 작성일Date 21-10-0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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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동화 중에 아기 돼지 삼 형제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화의 특징은 우화적인 내용을 통해 자연스레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아기 돼지 삼 형제 또한 삶에 필요한 중요한 교훈 한 가지를 전해줍니다. 세 마리의 형제 돼지들이 각각 집을 짓는데 어떤 재료를 가지고 집을 짓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교훈입니다. 게으른 제일 큰 형은 풀로, 잠꾸러기 둘째는 나무로 그리고 부지런한 셋째는 벽돌을 구워서 집을 짓습니다. 세 채의 집이 완성되었을 때 잔인한 늑대가 나타나서 큰 형을 위협하며 문을 열지 않으면 집을 날려 버리겠다고 합니다. 열지 않자 결국 풀로 만든 집은 늑대의 입김에 날아가 버리고 큰 형은 둘째네 집으로 도망합니다. 둘째의 집에 들이 닥친 늑대가 똑같은 위협을 한 후에 나무로 만든 집도 쉽게 부숴 버립니다. 절박한 두 형들은 벽돌로 집을 지은 셋째네 집으로 도망하고 배고픈 늑대는 끝까지 쫓아와 같은 위협을 하고 있는 힘을 다해 벽돌집을 부수려고 안간힘을 쓰나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집이 안전한 피난처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편하게, 대충대충, 모양새만 그럴 듯하게 지으면 된다는 생각에 대한 전환을 갖게 합니다. 특히 집이 한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의미까지 포함한다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이 동화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결론을 기억나게 합니다. 우리는 다 집을 짓는 자이고, 반석 위에 지을 것인가, 모래 위에 지을 것인가로 결과가 극으로 갈린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마 7:24-27). 반석이냐, 모래냐는 말씀의 바탕 위에 지을 것인가, 아닌가의 차이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기초가 되고 예수님의 말씀이 쌓는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하셨을 때 드러납니다(마 16:16-18). 이를 통해서도 반석이 예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교회’라 하시니 교회는 곧 예수님의 말씀으로 지어져야 함을 의미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집을 짓는 사람들로 비유합니다. 그것도 예사로운 집이 아닌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성스러운 건축을 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고전 3:10-16). 그 건축의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사람들이 그 위에 각기 다른 재료들로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 재료들 중에는 금, 은, 보석 같은 단단하고 영구적인 것들이 있는가 하면 나무나 풀이나 짚 같은 약하고 유한한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지은 집인 공적을 시험하는 요소가 있는데 그것이 불이라고 합니다. 그 불 속에서 견딜 수 있는 요소들은 역시 처음에 나열된 세 가지 재료들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금, 은, 보석들은 이미 오랜 세월을 거치며 불속에서도, 물속에서도 그리고 다른 더한 연단의 요소들을 통과하며 형성된 재료들이기에 불로 시험할지라도 결코 변하거나 사라져 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그에 반해 나무와 풀과 짚은 빠르게 마련할 수 있는 재료들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불과 같은 연단을 거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불 시험을 견딜 수 없는 재료들입니다. 타지 않는 재료들인 금, 은, 보석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곳의 열두 문은 열두 진주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쓰여 있고, 성곽은 열두 보석으로 이루어진 기초석이 있는데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계 21:12-21). 이는 곧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는 재료가 무엇인가를 알려줍니다. 바로 보석으로 변화된 성도들인 것입니다. 흙으로 지어진 존재들이 어떻게 보석으로 변화되는가는 계시록이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바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입니다(계 1:2, 9; 6:9; 11:7; 12:11, 17; 20:4).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도둑 같이 오실 터인데(마 24:42-44; 살전 5:2; 계 3:3; 16:15) 나무나 풀이나 짚을 훔치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가장 값진 것을 훔치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