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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해야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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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773회 작성일Date 21-07-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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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마찬가지겠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며 가장 어려운 것을 한 가지 들라고 한다면 믿음과 행함의 균형일 것입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상황에 따라 이쪽, 저쪽의 강조점이 달라져 자칫 균형을 잃어버릴 때가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66권의 어떤 책도 믿음만을 말하거나, 행함만을 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한쪽만으로는 결코 완성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말할 때 그 안에는 반드시 행함이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며, 행함을 말할 때는 반드시 그 출발이 은혜에 기초한 믿음이라는 것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 행함이 전제되어 있고, 행함 안에 믿음의 바탕이 기초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과 행함의 필연성을 설교할 때 다가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바로 형제, 자매님들이 던지는 “그럼 어디까지 살아내야 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곧 “어디까지, 어떻게 행해야 그리스도인다운 삶입니까?”라는 질문과 동일할 것입니다. 정말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들마다 서 있는 위치가 다르며, 재능이 다르고, 맡은 바 소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들에게 맞추어 제 각각 하나님 앞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야 할 길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세례 요한은 직업군으로 나누어서 구체적으로 살아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제시합니다. 일반 백성들을 향해서는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세리들에게는“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하며, 군인들에게는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합니다(눅 3:10-14). 그러나 우리 시대같이 이렇게 세분화되고, 같은 직종 안에서도 부의 규모 또한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때에 일괄적인 대답은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습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이끄시기 위해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믿음으로 값없이 주어진 영생이란 선물에 행함은 호흡과도 같은 것입니다. 생명과 호흡이 별개가 될 수 없듯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곧 죽음인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과 행함은 신앙의 본질이니 성령께서 긴밀하게 관여하셔서 이끌고 가실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은 우리가 무엇이 준비되었는지, 어디까지 준비되었는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곧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사 40:11). 양 떼를 먹이시는데 양의 상태에 따라 이끄시는 방법이 다르십니다. 어린 양은 험한 길 걷기가 힘드니 품에 안으시고, 젖먹이는 암컷은 천천히 이끄십니다. 이렇게 양들의 상태에 따라 인도하는 방법이 다르십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라고 하십니다(요 10:14). 양들의 상태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신다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모습만이 아니라 어떤 과거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으며 또한 가야 할 미래가 무엇인지도 분명하게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영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바로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니 성령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준비되었는지, 어린 양인지, 젖먹이는 양인지, 성숙된 양인지를 분명하게 아십니다. 그러므로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은 사람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님께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계 2:7, 11, 17, 29; 3:6, 13, 22).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