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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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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9회 작성일Date 21-07-0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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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고 선포하는 욥기는 그 지혜의 가치에 대해 이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모든 보석을 다 달아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합니다(욥 28:15-19). 하나님을 경외할 때 주어지는 지혜가 이러할진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은혜의 값은 어느 정도일까요? 그것도 영원하시고, 전능하시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생명을 기꺼이 내어주신 것이니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은혜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에서 출발합니다. 시편에서도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고 합니다. 여기서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구원을 보인다는 것을 흡사 무언가를 행해야 구원받는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은 곧 구원의 은혜를 누린 삶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행위를 옳게 하는 삶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구원을 보이리라”로 번역된 히브리어 구문은 “하나님의 구원 안에 있음(in the salvation of God)을 보일 것이라”로 번역해야 합니다. 감사로 인해 행위를 옳게 하는 삶은 곧 갚을 수 없는 은혜인 하나님의 구원 안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가벼이 여기는 풍조가 성도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나치 치하에서 복음의 본질을 몸으로 증거하였던 본 회퍼라는 독일 신학자는 그러한 이유를 교회가 값싼 은혜에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능력과 영향력을 잃게 만드는 값싼 은혜가 무엇인지를 짧지만 강력한 필치로 폭로합니다: “값싼 은혜는 회개의 요청이 없는 용서, 교회의 훈련이 없는 세례, 고백 없는 성찬, 개인적인 고백이 없는 죄사함을 선포하는 것이다. 값싼 은혜는 제자도가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계시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이다.” 그의 말의 결론은 결국 값싼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하는 것을 부인하는 결과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삶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진실된 예배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기에 심각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값어치 없이 여기는지에 대한 예가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사람의 이야기로 주어집니다(마 18:21-35). 한 달란트의 무게가 고대 근동의 시대와 나라별로 차이가 있지만 금 36Kg 정도로 추정되기에 그렇게 따지면 현재 가치로도 수십조원에 이르는 돈입니다. 한 사람이 이 정도의 빚을 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볼 때 이 액수는 그 당시에 한 사람이 결코 감당할 수 없고, 갚을 수 없는 액수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주인이 가족이든 무엇이든 가진 것 다 팔아 갚으라 하니 그 사람이 “엎드려 절하며 다 갚겠으니 참아달라고” 호소합니다. 이에 주인이 불쌍히 여겨서 그 빚을 남김없이 탕감해 줍니다.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신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돈을 갚으라고 윽박지릅니다. 그때 그 빚진 사람이 “엎드려 간구하며 다 갚겠으니 참아달라고” 호소합니다. 어느 모로 보나 탕감 받은 사람이 했던 것과 똑같이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니 백일치 품삯인 일백 데나리온도 작은 돈은 아니지만, 일만 달란트에 비하면 태산과 먼지 같이 비교조차 안 되는 것입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인 일만 달란트를 일백 데나리온보다 못한 것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이렇게 은혜가 값싸게 전락하면 삶은 싸구려 행동이 되어버립니다. 삶에서 감사가 사라지며, 이해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으며, 참지 않고, 나누지 않는 계산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값비싼 은혜에 대한 감사를 회복하면 십자가가 삶이 됩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