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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은 하나님께 득인가, 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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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2회 작성일Date 21-07-0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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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이유에 대하여 다양한 비유로 설명하는 예들이 있습니다. 그 한 가지 예가 홍수로 곧 제방이 무너지게 되었는데 그 제방 밑에 위치한 거대한 개미집에서 개미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외쳐대고, 경고음을 울린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기계로 개미집을 떠서 옮기는 것도 희생이 참 많이 따를 것입니다. 가장 좋은 길은 사람이 개미가 되어 가서 전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33년의 세월 동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이라는 한계 안에서 생활하시는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개미가 되어서 사는 것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제한이며, 고통의 감수일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시간에 제약을 받으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공간의 한계 안에서 활동하셔야 하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육체의 틀 속에 갇혀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이 피곤하여 주무셔야 하고, 영이신 하나님이 생존을 위해 음식을 드셔야 한다는 것이 바로 성육신의 낮아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그 순간부터가 이미 십자가였음을 절감케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33년의 성육신만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은혜임을 평생을 고백하고, 고백해도 모자랄 터인데 마침내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에 더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 하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신 그 이유까지 안다면 우리는 평생이 아니라 영원토록 은혜 위에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의 감격을 누린 후 더 이상 세상으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고 그 구원의 기쁨을 행복하게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되게 살아갈 길인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분부한 모든 말씀을 세상 모든 민족이 함께 살아갈 수 있게 제자를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성취할 수 있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약속해 주십니다. 이 약속이 바로 십자가 은혜 위에 또 은혜를 쌓아주시는 하나님 사랑의 완성입니다. 요한복음의 방식으로 말하자만 이것은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약속이 우리에게와 하나님께 어떤 무게감일까요?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33년 동안 사람의 육체 안에서 행하셨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그 육체를 주께서 전적으로 순종으로 이끌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안에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죄는 다 사함 받아 용서받은 존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고, 자기 생각으로 가득하며, 이기적이고, 한 치 앞도 모르면서 스스로의 계획으로 분주한 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런 우리 안에 영원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긍휼하시고, 정의로우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영이 내주하신다면 그 제약은 얼마나 더 크실까요? 세상 끝날까지라는 기간은 33년 동안의 성육신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희생의 시간일 것임은 말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강림은 하나님께 득일까요, 실일까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희생을 또다시 감수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이 일을 감행하셨습니다. 이제 성령의 사람인 우리에게 깊은 숙고와 성찰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득이 아닌 우리의 득을 택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또한 기꺼이 우리의 득이 아닌, 하나님의 득을 택할 때입니다.
김재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