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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희일비(一喜一悲)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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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079회 작성일Date 21-03-1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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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노라면 웃을 일도 많지만 그에 반해 슬퍼하고 울 일도 많습니다.
인생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야 이미 ‘천석군은 천가지 걱정 만석군은 만가지 걱정’이라는 세상 속담 속에도 드러납니다.
삶 속에서 기쁜 일이 벌어지면 좋아서 기분이 하늘 높이 올라가지만, 슬픈 일이 닥치면 언제 기쁨이 있었냐는 듯이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칩니다.
매일을 살아가며 ‘일희일비’를 거듭하는 것이 인생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물론 기쁠 때는 기뻐하고, 슬플 때는 슬퍼하는 것이 여느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마음이나 감정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상황이 좋을 때만 기쁘고, 상황이 나쁠 때는 눈에 띄게 침체되어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살아가는 삶의 여정은 무척이나 버거울 것입니다.
인생길 속에서 이와 같은 일희일비를 경험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더욱 깊이 있게 숙고해보게 됩니다.
“무엇이 내 안에 이와 같은 감정의 롤로코스터를 만드는 것일까?” “정말 상황과 환경일까, 아니면 나 자신의 마음일까?” 이 질문은 곧 “외부의 요인일까, 아니면 내부의 요인일까?”를 묻는 것이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성령의 감동으로 전한 그리스도인의 매일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로 요약되어 나타납니다.
이 속에는 상황따라, 환경따라 일희일비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설사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정말 어떠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삶의 절체절명의 순간 속에서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를 숙고해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구심이 드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 실행 불가능한 것을 명령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성경 말씀 속에서 수많은 내용들이 우리의 입맛 따라 없는 것처럼 취급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진리라면 어떤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슬픔이나 고통에 잠식되지 않고, 기쁨과 감사를 지켜낼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보통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슬픔과 고통은 사탄으로 인한 것이라고 치부해 버릴 때가 많습니다. 단면적으로는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기쁨만 주관하시는 신이며, 슬픔과 고통과는 무관하신 분이 됩니다.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사탄은 결코 우리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우리를 맡기실 때에는 결코 우리를 버리시려는 것이 아니라 더욱 든든히 세우시려는 것입니다.
사탄은 무너뜨리려 덤벼들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 과정을 거쳐 정금같이 세워질 우리를 보시고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시고, 그 시험에 함께하셔서 피할 길도 여시어 능히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0:13).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이 좋으신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신뢰가 우리 입술의 기도로 나타납니다. 믿으니 기도로 맡기는 것입니다.
시편이 바로 그것을 보여줍니다.
시편의 기도는 모두 하나님을 향하는데 이는 능히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통곡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띠 띠울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시 30:11).

그래서 바울 사도를 통해 주신 말씀에도 중심을 잘 살펴야 합니다.
시작은 ‘항상 기뻐하라’이고, 끝은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길을 그 가운데 넣어 놓았습니다.
바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곧 모든 것을 아시고, 계획하시고, 좋은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만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김재구 목사